[오제중의 바카라 룰로 명상하기] 퍼펙트 데이즈
과학기술발전의 그늘.현대인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명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왔다. 명상이불안을 떨칠탈출구인가.불안의 일단을 명상으로 이긴 작가 오제중이 영화를 모티브로 <히트바카라 룰 독자들에게 명상의 길을 안내한다.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오 작가는명상을 문화, 예술, 영상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며 에세이스트 겸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편집자
퍼펙트 데이즈(Perfect Days, 2024)
감독 : 빔 벤더스
주연 : 야크쇼 코지
수상 : 16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최우수작품상)
국내개봉 : 2024.07.03 (관객 14만명)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보다 연간 150시간 더 일한다. 그 결과,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렇다면 삶의 질은 어떨까. OECD 회원국 중 우울증 발병률과 자살률은 여전히 1위, 행복지수는 59위에 그쳤다. 특히 하루 동안 웃고 즐거운 순간을 얼마나 경험했는지 평가하는 '긍정 정서' 부문에서는 놀랍게도 117위를 기록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의 공허는 채워지지 않는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우리는 더 많이 벌고, 더 많은 경험을 쌓지만 정작 만족스러운 삶과는 점점 멀어져만 간다. 우리는 무엇을 좇아, 어디를 향해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가는 걸까?

'퍼펙트 데이즈'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바카라 룰다. 그의 하루는 단순하고 규칙적이다. 매일 아침 집 앞 자판기에서 늘 마시는 캔 커피를 뽑고, 소형차를 타고 출근하면서 카세트테이프로 흘러간 팝송을 듣는다. 맡은 구역의 공공화장실을 수행자처럼 묵묵히 청소하고, 공원 벤치에서 점심을 먹으며 가끔은 필름 카메라로 햇살이 스며드는 나무를 찍는다. 퇴근 후에는 자전거를 타고 단골 식당으로 가서 술 한잔을 기울이고, 작고 허름한 집으로 돌아와 헌책방에서 산 문고본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남들이 보기엔 특별한 것 없는, 어쩌면 단조롭기까지 한 일상이지만 히라야마는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가출한 조카 니키가 불쑥 찾아와 호수처럼 잔잔한 히라야마의 일상에 물음의 돌을 던진다.
반항적이고 불안정한 10대인 니키는 삼촌의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데도 화장실 청소부로 일하고, 더 넓고 편한 집에서 살 수 있음에도 좁고 낡은 곳을 고집하는 게 의아하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야"라고 무뚝뚝하게 건넨 말도 수수께끼 선문답처럼 들린다. 그러나 삼촌의 곁에서 하루를 보내며 그 의문들은 차츰 풀려간다. 삼촌은 온갖 잡념을 비우듯 쓰레기를 치우고, 지난날의 후회와 미련을 지우듯 변기를 닦으며, 앞날의 근심과 걱정을 털어내듯 비질한다. 그런 지루하고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결코 투덜거리거나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평온한 얼굴로 무심하게 매 순간 집중하고 몰입한다. 그리고 쳇바퀴 처럼 돌아가는 세상과 시시각각 변해가는 만물을 갓난아기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제야 니키는 "다음"은 없고, 오직 "지금"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바카라 룰는 히라야마의 삶을 통해 '완벽한 하루'의 진짜 의미를 일깨운다. 어쩌면 우리가 갈망하는 높은 지위나 많은 재산, 특별한 경험들은 마음의 평온과 무관할지도 모른다. 히라야마가 화장실을 청소할 때의 맑은 눈빛과 담담한 미소는 겉보기엔 평범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과 지혜가 깃들어 있다. 이는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에게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내 햇빛을 가리지 말라'고 답했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사소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며, 일상의 작은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바카라 룰 '퍼펙트 데이즈'가 전하는 메시지다.
나는 계획했던 일이 어그러지거나 기대했던 것이 틀어지면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목적지도, 도착지도 없이 무작정 걷는다. 발길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콘스탄티노스 카바피의 시 '이타카'를 경구처럼 되뇐다.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히라야마가 늘 보던 나무를 매번 새롭게 포착하듯,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거리의 아담한 풍경과 평범한 일상들을 눈에 담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면 찌그러졌던 마음도 시나브로 풀어진다. 발목이 시큰할 때쯤 공원 벤치에 앉는다.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후드득 쏟아지는 햇볕을 온몸으로 맞는다. 한자 '滿足'(만족)은 '발목까지 물이 찬다'는 뜻이다. 발 아래로 금빛 햇살의 치어들이 참방거린다. 더 바랄 게 없다.